불침번 새벽 3시, 같이 울었던 동기 이야기
자대 생활 3개월 차, 새벽 불침번에서 만난 동기의 눈물.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어머니가 아프고, 말 못 하고 삭히던 감정이 터진 새벽.
새벽 3시, 연등 아래
2020년 겨울. 자대 배치 받은 지 3개월쯤 된 일병 때다.
불침번 2교대 — 새벽 2시부터 4시. 솔직히 겨울 불침번은 최악이다. 복도 연등(비상등) 불빛만 있는 어두운 복도에서 2시간을 버텨야 한다. 졸면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 있기엔 너무 춥다.
그날도 평소처럼 복도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는데.
같은 교대인 동기 정우(가명)가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뭔가 이상했다. 눈이 빨갛더라.
"야 괜찮아?"
"... 응."
'응'이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군대에서 3개월이면 서로 대충 감이 온다. 이건 괜찮은 '응'이 아니라 터지기 직전인 '응'이었다.
"나 차였어"
정우가 내 옆에 앉더니 한참 말이 없었다. 1분? 2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말했다.
"여친이 카톡으로 헤어지재."
카톡으로. 전화도 아니고 만나서도 아니고 카톡으로.
"이번 달 들어서 읽씹이 점점 길어졌는데... 오늘 저녁에 카톡 왔더라. '우리 여기서 정리하자'래."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나도 여자친구가 있었고, 항상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있었다. "나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어머니
"그것만이 아니야."
정우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어머니가 아프시대. 적금 깨서 병원비 내고 있는 거 오늘 알았어."
군대에서 제일 무서운 건 총도 행군도 아니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다.정우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 안 내고, 어깨만 떨면서. 복도 연등 아래에서.
돼지바 두 개
나도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다 괜찮아질 거야" 같은 빈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PX에서 사다 놓은 돼지바를 가져왔다. 겨울이라 얼어 있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거 먹어."
"... 미쳤냐 새벽에 아이스크림을."
"ㅋㅋ 그냥 먹어."
얼어붙은 돼지바를 새벽 3시에 복도에서 같이 먹었다. 이가 시려서 욕이 나왔다. 근데 정우가 웃었다. 울다가 웃었다. "야 이 미친놈아 ㅋㅋㅋ 진짜 춥다" 하면서.
그 후
정우는 나중에 괜찮아졌다. 여자친구 건은 시간이 약이었고, 어머니도 크게 아픈 건 아니셨다. 나중에 전역하고 만났을 때 정우가 말하더라.
"솔직히 그때 돼지바 아니었으면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
"뭔 돼지바가 그렇게까지 ㅋㅋ"
"돼지바가 아니라 네가 옆에 있었던 거지."
군대에서 동기는 특별하다. 같은 날 입대하고, 같은 훈련 받고, 같은 밥 먹고. 사회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관계다. 위로의 말보다 옆에 있어 주는 게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군대에서 배웠다.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불침번 새벽의 연등 불빛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돼지바 맛도. 겨울 새벽에 먹는 돼지바는 이가 시리지만, 이상하게 그때 먹은 게 인생에서 제일 맛있었다.